티스토리 뷰

2025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 웹툰 원작 영화는 원작 팬심만 믿다가 흥행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지금까지 제가 직접 경험한 공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좀비딸'은 달랐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이건 진짜 잘 만든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케이션: 고사리밭이 오션뷰 할머니 집이 되기까지
일반적으로 영화 배경지는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좀비딸'은 원작의 강원도 농촌 배경을 아예 전라도 어촌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원작 팬 입장에서 '왜?'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완성된 화면을 보고 나서는 완전히 납득했습니다. 어촌 특유의 계절감과 바다 뷰가 미장센(mise-en-scène)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줬거든요.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소품·배경·배우 동선 등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연출 개념을 말합니다.
실제 촬영지는 전라도 설정과 달리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해바라기 마을과 신흥마을 일대입니다. 할머니 집은 원래 고사리밭이었던 자리에 집을 통째로 세트(set)로 지어 올린 것인데, 꽃이 활짝 필 시기를 역산해 4개월 전에 실제 꽃을 심었다고 합니다. 세트와 자연이 이 정도로 맞물리려면 사전 계획이 얼마나 치밀해야 하는지, 제 경험상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수준입니다.
미술팀이 직접 그린 벽화 덕분에 색감이 한층 살아났는데, 이 벽화는 촬영이 끝난 지금도 현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반면 오션뷰 할머니 집 세트는 촬영 종료 후 모두 철거되고 다시 고사리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저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감독이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느꼈던 힐링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는 의도가, 화면 색감에서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금동이: 400만 원짜리 더미를 쓸모없게 만든 고양이
동물 배우는 연기 지시가 안 된다는 게 업계의 통설입니다. 그런데 '좀비딸'의 고양이 배우 금동이는 이 공식을 정면으로 깨버렸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금동이의 쩍벌 자세를 봤을 때, 저 앉는 자세가 진짜라고? 싶어서 한 번 더 웃었습니다. 저 자세는 애드리브도, CG도 아닌 금동이 본인이 그냥 앉은 겁니다.
감독은 원작 웹툰의 고양이 캐릭터 애용 이를 포기할 수 없어서 실제 오디션을 통해 연기 가능한 고양이를 찾아냈습니다. 만나자마자 감독에게 폭 안겼다는 이유 하나로 캐스팅이 결정됐는데,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신의 한 수였습니다. 제작진이 400만 원을 들여 미리 제작해 둔 더미(dummy) 소품, 즉 실제 고양이 대신 사용할 모형이 있었는데, 금동이가 시키는 대로 정확히 자세를 취하는 바람에 한 번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촬영 초반 집중 훈련으로 살이 쪽 빠졌다가, 촬영이 길어지면서 점점 살이 쪘다는 후일담도 웃음 포인트입니다. 실제로 후반 촬영분에서는 제법 비대해진 금동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동이의 표정 연기가 워낙 좋아서 표정 CG 비용이 상당히 절약됐다는 후문도 있는데, 동물 배우가 제작비 절감에 기여한 사례는 제 기억엔 흔치 않습니다. 신 스틸러(scene stealer), 즉 주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을 가리키는 표현이 있는데, 금동이는 그 수준을 넘어 이 영화의 진짜 주연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캐스팅: 조정석·이정은·최유리, 왜 이 세 사람이어야 했나
웹툰 원작 영화의 캐스팅은 팬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원작 이미지에 맞는 비주얼을 우선시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좀비딸'은 비주얼보다 연기 시너지를 먼저 계산한 캐스팅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세 주연이 한 화면 안에 있는 순간마다, 이 조합이 아니면 이 영화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환 역은 조정석을 점찍어 뒀다고 합니다. 코믹과 슬픔을 본능적으로 오가는 연기 센스가 타고났다는 이유였는데, 실제로 극장 안에서 조정석의 애드리브(ad-lib), 즉 대본에 없는 즉흥 연기가 터질 때마다 관객 웃음이 쏟아졌습니다. "아이코, 좀비한테 물렸네" 하고 안타까워하는 찰나에 알고 보니 틀니였다는 반전으로 인해 영화관에서 이렇게 크게 웃은 장면은 오랜만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캐스팅이 확정된 건 수아 역의 최유리였습니다. 촬영 6개월 전부터 좀비 액션과 보아의 넘버원 안무를 연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보아의 넘버원 추는 최유리 양이 정말 너무 귀여웠는데, "나 부끄럼 많은 성격인 거 몰라>" 하면서 아빠보다 더 좀비같이 연기를 잘하는 딸을 보고 극장 전체가 웃음이 터졌던 상황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기분이 좋습니다.
좀비 렌즈도 전용으로 개발했습니다. 기존 특수 콘택트렌즈(contact lens)는 크기가 커서 장시간 착용이 어려웠기 때문에 미국 업체에 의뢰해 소형화된 맞춤형 렌즈를 새로 제작했습니다. 감정 표현 단계별로 총 네 가지 콘셉트의 렌즈를 만들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좀비가 된 뒤에도 아빠를 볼 때와 할머니를 볼 때 수아의 눈빛 리액션이 달랐던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이정은 배우의 할머니 역은 웹툰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synchronization rate), 즉 원작 캐릭터와 배우의 일치도가 너무 높아서 보는 내내 놀랐습니다. 분장 기술의 발전도 있겠지만, 딱 맞는 배우를 고른 감독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은 배우는 전국의 유명 할매 래퍼들을 직접 만나 핵인싸 할머니의 실제 감성을 익혀 왔다고 하는데, 효자손을 휘리릭 돌리는 그 애드리브 하나가 얼마나 오래 준비한 캐릭터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101호 아줌마 좀비 역을 맡은 이주이 배우는 댄서 출신으로, 역할을 따기 위해 오디션에서 좀비 단편 영화까지 직접 만들어 제출했다고 합니다. 그 열정이 화면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 조정석(정환 역):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낙점, 코믹·슬픔을 오가는 본능적 연기 센스
- 최유리(수아 역): 가장 먼저 캐스팅, 촬영 6개월 전부터 좀비 액션·보아 안무 연습
- 이정은(할머니 역): 전국 할매 래퍼 탐방으로 캐릭터 구축, 효자손 돌리기 애드리브
- 이주이(101호 아줌마 역): 댄서 출신, 오디션용 단편 영화 제작으로 열정 입증
웹툰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법 — '좀비딸'이 보여준 정답
웹툰 원작 영화가 실패하는 패턴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원작 재현에 집착하다 영화적 문법을 잃거나, 반대로 원작을 너무 멀리 벗어나 팬심을 잃거나. '좀비딸'이 흥미로운 건 두 가지를 동시에 잡았다는 점입니다. 원작의 배경과 일부 설정은 과감하게 바꾸면서도, 웹툰에서 독자가 사랑했던 감정의 결은 고스란히 살렸습니다.
원작에서는 프리랜서 번역가였던 주인공이 영화에서는 맹수 사육사로 바뀐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덕분에 딸이 좀비가 된 상황에서 아빠가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대구 네이처 파크의 실제 호랑이 망고를 하루 종일 촬영한 뒤 조정석 컷과 합성하는 방식도, 동물 배우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먼저 찍고 그에 맞춰 상황을 설계하는 역발상 촬영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는 그냥 사육사가 호랑이를 다루는 장면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좀비 액션 안무는 K-좀비 장르를 개척한 전영 안무가가 담당했습니다. 부산행, 킹덤, 방법 등을 통해 좀비 움직임의 공식을 만들어낸 분인데, 이번에는 각 좀비 캐릭터마다 개별 콘셉트를 부여하는 생활 좀비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과로에 지친 택배 아저씨 좀비와 수영 레슨 중이던 할머니 좀비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식입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BIS)의 흥행 집계에서도 '좀비딸'이 2025년 한국 영화 중 상위권을 기록했는데, 이 디테일한 설계들이 반복 관람을 유도한 요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
추러스 설정은 원작에 없는 내용인데, 감독이 자신의 딸이 어렸을 때 그토록 좋아하던 추러스를 어느 날 갑자기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억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자녀가 좀비가 됐다고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실제로 생긴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나요?? 저는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아오게 할 방법을 찾아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딸을 지키기 위해 좀비 연기를 훈련시키는 장면에서 뭉클함이 밀려왔던 건, 그 설정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감정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한국영화아카데미(KOFIC)에서도 웹툰 IP 기반 영화의 성공 사례로 이 작품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좀비딸 촬영지 남해 할머니 집 지금도 가볼 수 있나요?
A. 아쉽게도 할머니 집 세트는 촬영이 끝나고 전부 철거됐다고 합니다.. 한번쯤 가보고 싶은 동네였는데.. 원래 고사리밭이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고 합니다. 미술팀이 그린 벽화는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해바라기 마을과 신흥마을 일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현장 분위기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Q. 금동이 고양이 실제 연기 맞나요, CG 합성인가요?
A. 대부분의 연기는 실제 금동이가 했습니다. 제작진이 400만 원을 들여 더미 모형을 제작했지만 금동이가 지시대로 너무 잘 따라줘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부 표정 표현에만 CG의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표정 CG 비용이 상당히 절약됐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Q. 좀비딸 12세 관람가인데 무섭지 않나요?
A. 일반적으로 12세 관람가면 공포감이 많이 순화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봤을 때, 좀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꽤 충격적으로 연출됩니다. 실제로 이 장면에서 아이가 울어 중간에 나가는 가족도 있었다고 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족 코미디지만, 긴장감 있는 장면을 무서워하는 어린 아이와 함께라면 미리 확인하고 가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Q. 보아 넘버원이 왜 이 영화에 나오나요?
A. 감독의 개인적인 최애곡이기도 하지만, 가사 내용이 영화의 스토리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합니다. 수아가 경연대회를 위해 연습했다는 극 중 설정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최유리 양이 이 안무를 위해 촬영 6개월 전부터 연습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해당 장면이 더 다르게 보입니다.
결론
웹툰 원작 영화는 대체로 원작 팬을 만족시키거나 비원작 관객을 끌어오거나, 둘 중 하나에서만 성공한다는 게 제 경험상의 공식이었습니다. '좀비딸'은 그 공식을 깨버렸습니다. 로케이션과 세트에 쏟아부은 디테일, 금동이라는 예상 밖의 신인 배우,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완성한 배우들의 합이 어우러지면서 원작 팬도 비원작 관객도 모두 납득하게 만든 드문 사례입니다.
아직 보지 못했다면 웹툰 원작을 먼저 읽고 가는 것도 좋고, 그냥 가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였는데, 오히려 원작을 나중에 찾아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공포와 코미디, 가족 감동이 한 편에 다 담겨 있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좀비딸'이 지금 가장 확실한 선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