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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298만 명이 선택한 영화,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입니다. 처음 봤을 때 "이게 한국 영화 맞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홍콩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한국 배우들이 이렇게 화려하게 뛰어다니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블루레이 코멘터리까지 들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어진 작품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케이퍼 무비의 완결판, 도둑들이 탄생한 이유
혹시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를 보셨다면, 최동훈 감독이 어떤 색을 가진 감독인지 이미 아실 겁니다. <도둑들>은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사실상 최동훈 케이퍼 몹(Caper Mob) 3부작의 완결 편으로 평가받습니다. 여기서 케이퍼 무비(Caper Movie)란 치밀한 계획을 세운 범죄자들이 거대한 목표물을 훔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오락 영화 장르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화려한 도둑질 이야기"라고 보면 됩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실제 도둑들이 사실은 다 연기자라는 생각, 그리고 홍콩과 마카오의 도시적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이 시나리오를 처음 기획했다고 밝혔습니다. 자비에르 성당 앞에서 칭다오를 마시며 시나리오의 씨앗을 떠올렸다는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감독이 직접 성당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구상한 이야기가 1,298만 관객을 만들어냈다는 게 저는 아직도 신기합니다.
최동훈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대사와 행동 사이에 간섭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사가 끝나기도 전에 동작이 시작되고, 행동이 끝나기 전에 다음 대사가 따라붙습니다. 이 스타일 때문에 촬영 초반에는 베테랑 배우들도 적응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김해숙 배우조차 이 영화를 통해 대사와 액션을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하는 훈련이 됐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 케이퍼 무비 3부작: 범죄의 재구성 → 타짜 → 도둑들
- 기획 계기: 홍콩·마카오의 도시적 매력 + 배우=도둑이라는 발상
- 연출 철학: 대사와 동작 사이 군더더기 없는 빠른 편집
- 흥행 결과: 2012년 한국 영화 역대 최다 관객 중 하나로 기록
이런 캐스팅이 또 가능할까, 배우들 이야기
솔직히 이 영화의 캐스팅만 놓고 봐도 이미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주진모, 오달수, 김해숙에 신하균 배우까지 특별출연으로 얼굴을 비추고, 홍콩 배우 임달화와 증옥상까지 합류했습니다. 제가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이 라인업이 실화냐"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전지현 배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정말 많습니다. 예니콜 역을 연기한 전지현 배우는 거의 스턴트 없이 직접 액션을 소화했습니다. 마카오 건물 외벽을 타는 장면도, 빈 벽 앞에서 CG를 위한 연기도, 물속 수조 씬도 직접 했습니다. "뛸 때마다 다시는 못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뛰었다"는 코멘터리를 들으면서, 저는 그냥 미모만으로 이 배우를 봤던 게 부끄러웠습니다.
김혜수 배우와 김윤석 배우의 관계에 대해서는 처음에 솔직히 "왜 저 나쁜 남자를 아직도 좋아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윤석이 완벽한 나쁜 남자의 표본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코멘터리를 듣고 보니, 두 배우가 서로 긴장감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낸 호흡이었고, 감독도 그 신을 너무 좋아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지켜봤다고 합니다. 그 장면에서 김혜수 배우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아주 작은 표정으로만 표현했는데, 감독이 그 짧은 실망감을 너무 좋아했다는 대목에서 저도 무릎을 쳤습니다.
김수현 배우는 이 영화에서 정말 어리게 나옵니다. 그런데 감독이 "상황에 맞게 계속 연기 디테일을 설정하는 걸 보면서, 정말 훌륭한 배우가 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정말 훌륭한 배우가 됐죠. 전지현 배우와의 풋풋한 러브라인도 보기 좋았습니다. 두 배우 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니 세월이 참 빠르다 싶었습니다.
마카오는 절반이 가짜였다, 촬영 비하인드
이 영화를 볼 때 마카오 전경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마카오 항공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아서 전체 마카오 풍경 샷을 CG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 이 사실을 들었을 때 "그 퀄리티로 CG였다고?" 싶어서 다시 찾아봤습니다. 실제로 전지현 배우가 빈 벽 앞에서 연기를 한 뒤 마카오 배경을 합성한 방식이었고, 사전에 시뮬레이션까지 해보고 진행했다고 합니다.
로케이션 합성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한 장면 안에 대전, 양수리 세트장, 파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었고, 마카오처럼 보이는 씬이 실제로는 부산에서 촬영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세트를 짓고, 구조를 변경해 가며 다른 공간을 만들어 촬영한 뒤 CG로 마무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쓰는 이런 기법을 컴포지팅(Compositing)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컴포지팅이란 실사 촬영본과 CG 요소를 하나의 화면으로 합성해 완성된 장면을 만드는 시각효과 작업을 뜻합니다.
금고를 터는 시퀀스는 실제 도둑 자문을 받아 만들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멍을 뚫어 내시경을 넣는 방식은 실제 범죄 현장에서 쓰이는 방법이라고 하며, 도구도 전문 회사의 자문을 받아 설계하고 제작했다고 합니다. 감독은 "이 신이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금고를 여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에 길게 가야 했다"라고 말했는데, 저도 그 긴장감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관련 기술의 현실성에 대한 논쟁이 개봉 당시 꽤 있었다고도 하더군요.
총기 소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총은 모두 실제 총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무거워서 테이크를 반복하다 보면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는 배우들의 코멘터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또 최동훈 감독이 유독 애착을 갖는 소품인 뒤퐁 라이터가 이번에도 등장하는데, <타짜>의 고니부터 시작해서 최동훈 영화에서 듀퐁은 일종의 허세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상징하는 오브제(Object)로 반복 등장합니다. 여기서 오브제란 영화나 문학에서 특정 의미나 상징을 전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소품 또는 사물을 뜻합니다.
대사 하나, 캐릭터 하나가 다 살아있는 이유
도둑들을 볼 때 대사가 유독 잘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그건 단순히 작가의 실력만이 아닙니다. 감독은 배우들이 뭔가를 먹고 마시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많이 넣었는데, "도둑들도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모습을 한 화면에 담으려 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무슨 음식을 먹는지 이야기하면, 당신이 뭘 하는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서양 속담을 염두에 두고 연출했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처럼 각 캐릭터의 음식 취향 하나가 성격을 드러내는 방식을 캐릭터 시그니처(Character Signature)라 부릅니다. 쉽게 말해 인물을 단번에 각인시키는 반복 행동이나 소품입니다.
예니콜이라는 캐릭터 이름이 사실 원래 이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저는 코멘터리를 듣기 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원래 다른 별명이 있었는데, 껌을 이용해 빛을 차단하는 시퀀스를 촬영하면서 '씹던 껌'이라는 새 이름이 만들어졌고, 그 이름 안에 "옛날에 껌 좀 씹었다"는 화려한 과거까지 함의된다고 감독이 직접 설명했습니다. 이름 하나에 서사까지 담은 셈입니다.
전지현 배우와 김혜수 배우가 태양의 눈물을 사이에 두고 문 앞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씬 중 하나입니다. 대선배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물러서지 않는 전지현 배우의 눈빛,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김혜수 배우가 부딪히는 그 순간은 제가 보기엔 미모 대결이 아니라 에너지 대결이었습니다. 그 뒤 전지현 배우가 슈트를 벗고 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장면 하나로 예니콜이라는 캐릭터가 완성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편 <도둑들>의 각 캐릭터는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으로 과거가 중간중간 공개됩니다. 여기서 플래시백이란 현재 시점 서사 중간에 과거 사건을 삽입해 캐릭터의 동기나 사연을 설명하는 영화적 서술 장치를 의미합니다. 감독은 구성에 대해 오랜 고민 끝에 이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는데, 덕분에 영화 초반에는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 되던 인물들에게 나중에 감정이 생기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저는 임달화와 김해숙 배우가 연기한 중년 커플에게 마지막에 감정이 이입되어서, 두 분이 어떻게든 잘 됐으면 했습니다. 도둑이지만요.
자주 묻는 질문
Q. 도둑들 마카오 촬영 장면이 진짜인가요, CG인가요?
A. 마카오의 풍경 전경 샷은 항공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 전부 CG로 제작되었습니다. 배우들은 실제 빈 공간에서 연기한 뒤 마카오 배경을 합성하는 컴포지팅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실제 마카오에서 촬영된 씬은 카지노 메인 홀 등 일부에 한정됩니다. 저도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진 전혀 몰랐을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
Q. 예니콜이라는 이름이 원래부터 그 이름이었나요?
A. 아닙니다. 원래는 다른 별명이 설정되어 있었는데, 껌으로 빛을 막는 촬영 시퀀스를 진행하면서 '씹던 껌'이라는 이름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감독은 이 이름이 "옛날에 껌 좀 씹었다"는 화려한 과거까지 함의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Q. 전지현 배우가 직접 액션을 다 한 건가요?
A. 거의 그렇습니다. 블루레이 코멘터리에 따르면 전지현 배우는 외벽 타기, 수조 수중 씬,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등 대부분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고 합니다. "뛸 때마다 다시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또 뛰었다"고 본인이 직접 말할 정도로 고생이 심했다고 전해집니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해서 같은 액션도 자세가 더 멋있게 나온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Q. 도둑들에서 김수현은 어떤 역할인가요?
A. 김수현 배우는 마카오 카지노 씬에서 현지 카지노와 연관된 인물로 등장합니다. 등장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상황에 맞게 연기 디테일을 스스로 설정하는 모습을 보고 최동훈 감독이 "훌륭한 배우가 되겠구나"라고 예감했다는 에피소드가 코멘터리에 담겨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예감이 정확히 맞아떨어졌죠.
결론
도둑들은 천만 관객이라는 숫자보다 그 안에 담긴 디테일이 더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블루레이 코멘터리를 통해 감독과 배우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보고 나서, 제가 그냥 재미있게 봤던 장면들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갔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단순히 화려한 캐스팅에 기댄 영화가 아니라, 진짜로 배우들의 빛을 살리기 위해 감독이 모든 것을 설계한 영화였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한 번만 보셨다면, 캐릭터 한 명에만 집중해서 다시 보는 걸 제가 권하고 싶습니다. 예니콜만 쫓아보거나, 펩시만 쫓아보거나, 마카오 박만 쫓아보는 식으로요. 숨겨진 연기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 영화가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 저도 그렇게 세 번을 봤고, 볼 때마다 새로웠습니다. (출처: 도둑들 블루레이 코멘터리 영상)

